작은 사랑

작은 사랑이 세상을 깨웁니다

사랑과 생명의 불사 '아픈 어린이 돕기'는
여러분과 손잡고 쉼없이 나아갑니다

작은사랑 후원계좌

신한은행 100-013-487176 이신혜(작은사랑)
국민은행 023-01-0555-123 이신혜(작은사랑)
하나은행 111-258743-00108 이신혜(작은사랑)

‘작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지속되고 있는 아픈 어린이 돕기는 1997년 처음 시작된 이래 해마다 1억 5천만 원이 넘는 성금을 치료비로 전달하고 있고, 1년에 40명의 어린이에게 희망의 싹을 틔우며 한결같이 걸어왔습니다. 저희들 일에 꾸준히 동참해 주신 서울대학교병원 신희영 교수님 말씀에 따르면 ‘작은 사랑’의 도움을 받은 어린이들은 왠지 완쾌되는 확률이 높다고 합니다. 그 아이들은 대개 재발한 환자로서 도움의 손길에서도 멀어져 있었지요. 사랑의 힘 때문에 좋은 치료 효과를 얻게 되었다는 신 교수님 설명을 들으며 우리는 그저 더 많은 어린이들에게 자비의 손길이 닿기를 소망할 뿐입니다. 제가 아픈 어린이들과 인연을 맺게 된 건 오래전 병원 법당에 있었을 때부터입니다.
환자들을 위로하려고 병실을 드나들면서 가장 가슴 아팠던 일은 아픈 아이들을 만나는 일이었지요.
신생아 중환자실을 떠올리면 지금도 가슴이 저려옵니다.

하루는 중환자실에 신생아를 둔 한 부부가 법당에 찾아왔습니다.
“병실 밖에 서 있노라면 속만 까맣게 타들어갈 뿐 아이에게 아무 도움도 줄 수 없다는 사실이 너무 괴롭습니다. 병원에 부탁하면 스님은 중환자실에 들어가실 수 있을 테니 제발 우리 아기 옆에 가서 우리 마음 좀 전해주시고 기도도 좀 해주세요.”
옆에서 간호도 해줄 수 없는 부모의 심정을 어떻게 글로 옮길 수 있겠습니까. 천주교 신자이던 그분들의 애타는 심정은 저까지 타들어가게 했지요.
병원 측에 부탁해서 나는 발끝까지 초록색 소독복으로 갈아입고, 얼굴엔 마스크까지 한 채 중환자실에 들어갔습니다. 천사 같은 아기들이 있는 곳이라 꽃과 별, 물고기 등 예쁜 그림이 사방에 그려져 있더군요. 어른들이 있는 곳보다 분위기는 훨씬 밝고 깨끗했지만 주삿바늘을 꽂고 누워 있는 아이들 모습은 차마 눈뜨고 보기 힘들었습니다. 실핏줄이 다 비칠 정도로 연한 아기들의 머리와 팔, 배에 꽂혀 있는 주삿바늘을 보니 온몸이 오그라드는 것 같았습니다.

병원에 있는 동안 환자들을 많이 보았지만 그런 충격적인 장면은 처음이었습니다. 이윽고 그분들이 부탁한 아기 곁에 선 나는 말문이 막혔고, 가슴속 깊은 곳에 숨어 있던 슬픔이 커다란 소리를 내며 올라오는 것 같았습니다. 아기의 작은 손가락 위에 내 손을 살짝 갖다 댄 채 나는 간절히 아기가 겪고 있는 고통이 빨리 끝나기를 기원했습니다.
아마 그토록 절실하게 누군가의 고통을 내가 대신 받을 수 있기를 기원할 일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아무 죄도 없는 아기들이 도대체 왜 그런 고통을 받아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이토록 어린 생명들이 세상 밖으로 나오자마자 왜 이런 고통에 시달려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 어떤 이유로도 해석되지 않는 그 일을 생각하며 나는 적지 않은 시간 동안 잠을 설쳤습니다. 그날 받은 충격은 오랫동안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가고 마음의 충격에서 회복될 무렵 나는 가슴 속에 작은 서원을 하나 세웠습니다. 온 세상 아이들이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살 수 있는 날이 올 때까지 작은 힘이라도 보태리라. 아픈 어린이 돕기는 그렇게 해서 시작되었습니다. ‘작은 사랑이 세상을 깨웁니다’라는 슬로건을 화두처럼 내걸고 시작한 이 사랑의 운동이 계속되는 동안 적지 않은 분들이 아픈 어린이를 위해 통장을 개설하셨고, 많은 분들이 온라인을 통해 꼬박꼬박 성금을 보내오셨습니다.
여러분 한사람 한사람의 사랑으로 피운 이 아름다운 꽃을 저는 자비의 꽃이라 부르고 싶습니다. 살아가면서 우리가 타인에게 사랑을 보낼 수 있는 일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금전으로, 또는 지식으로, 혹은 시간과 정성으로 무언가를 할 수 있습니다.교사는 가르칠 수 있고, 의사나 간호사는 치료해 줄 수 있으며, 마음이 따뜻한 사람들은 자신의 몸을 바쳐 봉사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인간의 몸으로 태어나 살아가는 목적은, 자신의 향상과 다른 생명들을 돕기 위해서라고 했습니다.
자신의 발전을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는 삶도 아름답지만, 남을 도우면서 살아가는 삶은 그것대로 또 얼마나 향기로운가요. 아무도 없는 사막에서 밤을 맞은 나그네는 하늘의 별을 보고 길을 찾아갑니다.

어두운 밤, 세상의 모든 부모는 하늘의 별자리를 보듯 아이들을 떠올리며 집으로 돌아갑니다.
이 세상에 귀하지 않은 아이가 어디 있으며, 아이들을 희망의 별빛으로 여기지 않는 부모가 어디 있겠습니까.
한창 부모 품에서 재롱을 피워야 할 아이들이 질병으로 신음하는 현실 앞에서 우리는 때로 이 미약한 힘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무기력해질 때도 있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단지 그들과 아픔을 함께 나누고 그들 곁에 따뜻한 이웃으로 서 있는 것밖에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기쁨을 나누는 순간 두 배가 되듯이 아픔 또한 나누어서 절반이 되지 않으리란 법은 없습니다.
함께하는 순간 고통의 농도는 천만 분의 일이라도 줄어들겠지요. 걷잡을 수 없는 불길도 처음엔 한 개비의 성냥에서 피어나고, 장쾌한 폭포수도 한 방울의 이슬에서 비롯됩니다.
우리가 보내는 작은 후원이 한순간에 아이들의 고통을 소멸시키진 못하더라도 그들과 그들의 부모에게는 희망의 거름이 될 것입니다.

"작은 사랑이 세상을 깨웁니다." 라는 슬로건으로 펼치고 있는 이 아름다운 불사는 정각사를 통해 앞으로도 지속해 나가겠습니다. 이 시대 종교의 역할은 수행을 통해 지혜에 눈뜨는 일과 사회의 고통이나 아픔과 연결되어 서로 돕고 힘이 되는 자비의 실천을 동시에 이루어 가야 할 것입니다. 작은 사랑에 매번 후원을 아끼지 않고 동참해주시는 분들에게 무량한 공덕이 쌓이고 삶은 순탄하시길 기원드립니다.

정목 두 손 모음

‘작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지속되고 있는 아픈 어린이 돕기는 1997년 처음 시작된 이래 해마다 1억 5천만 원이 넘는 성금을 치료비로 전달하고 있고, 1년에 40명의 어린이에게 희망의 싹을 틔우며 한결같이 걸어왔습니다. 저희들 일에 꾸준히 동참해 주신 서울대학교병원 신희영 교수님 말씀에 따르면 ‘작은 사랑’의 도움을 받은 어린이들은 왠지 완쾌되는 확률이 높다고 합니다. 그 아이들은 대개 재발한 환자로서 도움의 손길에서도 멀어져 있었지요. 사랑의 힘 때문에 좋은 치료 효과를 얻게 되었다는 신 교수님 설명을 들으며 우리는 그저 더 많은 어린이들에게 자비의 손길이 닿기를 소망할 뿐입니다. 제가 아픈 어린이들과 인연을 맺게 된 건 오래전 병원 법당에 있었을 때부터입니다. 환자들을 위로하려고 병실을 드나들면서 가장 가슴 아팠던 일은 아픈 아이들을 만나는 일이었지요. 신생아 중환자실을 떠올리면 지금도 가슴이 저려옵니다.

하루는 중환자실에 신생아를 둔 한 부부가 법당에 찾아왔습니다. “병실 밖에 서 있노라면 속만 까맣게 타들어갈 뿐 아이에게 아무 도움도 줄 수 없다는 사실이 너무 괴롭습니다. 병원에 부탁하면 스님은 중환자실에 들어가실 수 있을 테니 제발 우리 아기 옆에 가서 우리 마음 좀 전해주시고 기도도 좀 해주세요.” 옆에서 간호도 해줄 수 없는 부모의 심정을 어떻게 글로 옮길 수 있겠습니까. 천주교 신자이던 그분들의 애타는 심정은 저까지 타들어가게 했지요. 병원 측에 부탁해서 나는 발끝까지 초록색 소독복으로 갈아입고, 얼굴엔 마스크까지 한 채 중환자실에 들어갔습니다. 천사 같은 아기들이 있는 곳이라 꽃과 별, 물고기 등 예쁜 그림이 사방에 그려져 있더군요. 어른들이 있는 곳보다 분위기는 훨씬 밝고 깨끗했지만 주삿바늘을 꽂고 누워 있는 아이들 모습은 차마 눈뜨고 보기 힘들었습니다. 실핏줄이 다 비칠 정도로 연한 아기들의 머리와 팔, 배에 꽂혀 있는 주삿바늘을 보니 온몸이 오그라드는 것 같았습니다.

병원에 있는 동안 환자들을 많이 보았지만 그런 충격적인 장면은 처음이었습니다. 이윽고 그분들이 부탁한 아기 곁에 선 나는 말문이 막혔고, 가슴속 깊은 곳에 숨어 있던 슬픔이 커다란 소리를 내며 올라오는 것 같았습니다. 아기의 작은 손가락 위에 내 손을 살짝 갖다 댄 채 나는 간절히 아기가 겪고 있는 고통이 빨리 끝나기를 기원했습니다. 아마 그토록 절실하게 누군가의 고통을 내가 대신 받을 수 있기를 기원할 일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아무 죄도 없는 아기들이 도대체 왜 그런 고통을 받아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이토록 어린 생명들이 세상 밖으로 나오자마자 왜 이런 고통에 시달려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 어떤 이유로도 해석되지 않는 그 일을 생각하며 나는 적지 않은 시간 동안 잠을 설쳤습니다. 그날 받은 충격은 오랫동안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가고 마음의 충격에서 회복될 무렵 나는 가슴 속에 작은 서원을 하나 세웠습니다. 온 세상 아이들이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살 수 있는 날이 올 때까지 작은 힘이라도 보태리라. 아픈 어린이 돕기는 그렇게 해서 시작되었습니다. ‘작은 사랑이 세상을 깨웁니다’라는 슬로건을 화두처럼 내걸고 시작한 이 사랑의 운동이 계속되는 동안 적지 않은 분들이 아픈 어린이를 위해 통장을 개설하셨고, 많은 분들이 온라인을 통해 꼬박꼬박 성금을 보내오셨습니다. 여러분 한사람 한사람의 사랑으로 피운 이 아름다운 꽃을 저는 자비의 꽃이라 부르고 싶습니다. 살아가면서 우리가 타인에게 사랑을 보낼 수 있는 일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금전으로, 또는 지식으로, 혹은 시간과 정성으로 무언가를 할 수 있습니다.교사는 가르칠 수 있고, 의사나 간호사는 치료해 줄 수 있으며, 마음이 따뜻한 사람들은 자신의 몸을 바쳐 봉사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인간의 몸으로 태어나 살아가는 목적은, 자신의 향상과 다른 생명들을 돕기 위해서라고 했습니다. 자신의 발전을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는 삶도 아름답지만, 남을 도우면서 살아가는 삶은 그것대로 또 얼마나 향기로운가요. 아무도 없는 사막에서 밤을 맞은 나그네는 하늘의 별을 보고 길을 찾아갑니다.

어두운 밤, 세상의 모든 부모는 하늘의 별자리를 보듯 아이들을 떠올리며 집으로 돌아갑니다. 이 세상에 귀하지 않은 아이가 어디 있으며, 아이들을 희망의 별빛으로 여기지 않는 부모가 어디 있겠습니까. 한창 부모 품에서 재롱을 피워야 할 아이들이 질병으로 신음하는 현실 앞에서 우리는 때로 이 미약한 힘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무기력해질 때도 있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단지 그들과 아픔을 함께 나누고 그들 곁에 따뜻한 이웃으로 서 있는 것밖에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기쁨을 나누는 순간 두 배가 되듯이 아픔 또한 나누어서 절반이 되지 않으리란 법은 없습니다. 함께하는 순간 고통의 농도는 천만 분의 일이라도 줄어들겠지요. 걷잡을 수 없는 불길도 처음엔 한 개비의 성냥에서 피어나고, 장쾌한 폭포수도 한 방울의 이슬에서 비롯됩니다. 우리가 보내는 작은 후원이 한순간에 아이들의 고통을 소멸시키진 못하더라도 그들과 그들의 부모에게는 희망의 거름이 될 것입니다.

"작은 사랑이 세상을 깨웁니다." 라는 슬로건으로 펼치고 있는 이 아름다운 불사는 정각사를 통해 앞으로도 지속해 나가겠습니다. 이 시대 종교의 역할은 수행을 통해 지혜에 눈뜨는 일과 사회의 고통이나 아픔과 연결되어 서로 돕고 힘이 되는 자비의 실천을 동시에 이루어 가야 할 것입니다. 작은 사랑에 매번 후원을 아끼지 않고 동참해주시는 분들에게 무량한 공덕이 쌓이고 삶은 순탄하시길 기원드립니다.

정목 두 손 모음